연세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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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일의 ‘혁신 리더십’ #5 <한국타이어에서 타이어를 빼면 뭐가 남을까>
등록일: 2021-02-09  |  조회수: 676

2019년 3월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란 지주회사가 주주총회를 열고 회사 이름에서 ‘타이어’라는 단어를 빼기로 결정했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으로 사명이 바뀐 이 지주회사는 1941년에 설립되어 타이어 시장에서 매출기준으로 세계 7위인 한국타이어라는 기업을 소유하고 있다. 한국타이어가 그룹 전체 매출의 95%를 차지하고 있고 그래서 누가 보기에도 타이어 회사인 이 회사의 경영진은 왜 그룹의 정체성이나 다름없을 ‘타이어’란 단어를 사명에서 떼어내려 한 것일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타이어 사업만 가지고는 앞으로 지속적인 성장은 물론이고 생존 자체가 힘들어질 것이라는 판단이다. 침체에 빠진 자동차 산업의 영향으로 성장이 둔화되자 살아남기 위해서 자동차 부품사업에 진출하려고도 해보고 이런 저런 M&A를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회사명에 타이어란 단어가 들어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왜 타이어 회사가 이런 사업을 합니까?’ 라고 의문을 가지는 것이다.

타이어를 회사명에서 빼는 또 다른 이유는 회사 이름에 타이어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임직원들이 타이어 이외의 사업 가능성과 혁신에 대해 고민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많은 상황에서 형식은 내용을 지배하는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멀쩡한 사람이 예비군복을 입으면 행동이 느려지고 반항기가 생기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반대로 멋진 제복을 입으면 왠지 행동거지를 바르고 프로페셔널 하게 해야 할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마찬가지로 회사 이름에 타이어란 단어가 들어가 있으면 이 회사에 근무하는 임직원들은 타이어에 대한 고민만 하면 된다는 생각의 틀을 벗어나기 힘들어지게 된다.

사실 글로벌 기업들이 사명이나 로고에서 자신의 정체성이나 다름없는 단어를 지우기 시작한지는 이미 오래 전이다. 가장 대표적인 회사가 스타벅스이다. 과거에 이 회사가 사용했던 로고를 보면 한 가운데 미소를 띠고 있는 바다의 신인 ‘세이렌'이 있고 상단에는 스타벅스라는 단어가 하단에는 커피라는 단어가 영어로 써 있었다. 하지만 이 회사는 2011년 로고를 다시 만들면서 가운데 있는 여신의 크기를 키우고 스타벅스와 커피라는 단어를 과감히 삭제한다. 스타벅스 조차도 커피위주의 사업모델만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이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 후 스타벅스는 다양한 사업을 통해 플랫폼 기업으로 발전했고 이후 핀테크를 활용한 개인금융업에까지 진출하는 등 지속적인 진화를 하고 있는 중이다.

가장 변화가 천천히 이루어지는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은행업계에서도 이제 자신들의 정체성을 과감히 무너뜨리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사명에서 ‘은행 (bank)’ 이라는 단어를 지우고 있다. 시티은행 (Citi Bank)이라 불렸던 회사의 미국 홈페이지를 가보면 bank 라는 단어는 사라졌고 Citi라 단어만 눈에 보인다. 미국을 대표하는 은행인 JPMorgan Chase나 Wells Fargo의 이름 어디에도 은행이란 단어를 찾아보기 힘들다. 은행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기 보다 종합금융회사 혹은 투자회사로서 성장하겠다는 의지를 소비자와 임직원에게 소통하겠다는 뜻이다.

사명에서 자신이 속한 업의 특성을 떼어내고 그 동안 쌓아온 브랜드를 포기하면서 까지 새로운 비전을 위해 변신하려는 추세에 많은 한국기업들도 동참하고 있다. 기아자동차는 지난 1월 15일에 열린 ‘뉴 기아 브랜드 쇼케이스’에서 사명을 ‘기아차’에서 ‘기아’로 변경하며 “이제 우리는 자동차 회사가 아닌 고객의 자유로운 이동과 움직임을 위해 지속 가능한 모빌리티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로 변신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SK텔레콤 역시 사명에서 ‘텔레콤’이란 단어를 버리고 인공지능과 모빌리티를 바탕으로 한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이다.

칼럼을 읽고 있는 경영대 구성원들에게 묻고 싶다. 나는 혹은 우리 조직은 이제까지 해왔던 일들에 대한 타성에 젖어 본질적인 변화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우리만의 컴포트 존 (comfort zone)에 빠져 새로운 혁신에 대한 노력을 등한시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물론 조직이 가지고 있는 핵심역량과 무관한 사업영역으로 무차별적인 다각화를 시도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겉으로만 멋있어 보이는 혹은 트렌드에 따라가고자 변화에 대한 절실한 의지나 구체적인 실행계획 없이 사명을 바꾸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업의 경계 (boundary)가 의미 없어진 시대에 기존 사업에 대한 생각의 틀에 사로잡혀서 변화하려는 노력을 멈추고 있는지 치열하게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혁신과정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의 한계점으로 인해 봐야 할 것들을 놓치고 있는지 확인해보자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지금 경영의 패러다임이 본질적으로 변화되고 있는 전략의 변곡점에 서있다. 변곡점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더 열심히’가 아니라 ‘더 스마트’하게 이제까지 해왔던 사업과 조직운영 방식을 제로베이스에서 고민하는 것이다. 망하지 않으려면 업의 본질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필요하다. 왜 기아자동자가 사명에서 자동차란 단어를 떼어내려 하고 스타벅스의 로고에서 커피라는 단어가 사라질 수 밖에 없는지 고민해보자. 생존을 위해서 포기할 것을 찾는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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